문학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드워드 올비

빛나는 달빛 2020. 11. 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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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에드워드 올비 작가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작품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에드워드 올비

작가 소개 : 에드워드 올비

에드워드 올비는 1928년 3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출생한 지 2개월만에 올비 가에 입양되어 현재의 이름인 올비를 얻게 됩니다. 그는 트리니티 대학을 다니다가 퇴학을 당한 후 양부모와 결별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쓰던 도중 우리에게 희곡 '우리 읍내'로 잘 알려져 있는 손톤 와일더에게 희곡에 전념하라는 충고를 받은 뒤에 그는 집중적으로 희곡에 전념하게 됩니다. 1958년 그는 '동물원 이야기'라는 희곡을 집필합니다. 동물원 이야기를 상연하고 1960년에 버넌 라이스 기념상을 수상합니다. 그 후 '베시 스미스의 죽음', '모래 상자', '아메리칸드림'과 같은 사회 부조리 극을 주로 선보인 그는 1963년에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관객들 앞에 선보이며 그는 아서 밀러, 테네시 윌리엄스, 유진 오닐의 뒤를 잇는 스타 작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훗날 엘리자베스 테일러, 리처드 버튼이 주연으로 참여한 영화로 상영되게 됩니다. 2004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브로드웨이에서 재상영되면서 그는 토니상 특별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극작가로서 얻을 수 있는 명예를 다 얻은 올비는 2016년 9월 16일 뉴욕 동부 몬타우크 자택에서 88세의 나이로 영면합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줄거리

자정이 넘은 시각, 한 집에는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남편 조지는 작은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이며 아내 마사는 대학 총장의 딸입니다. 그들은 작은 언쟁을 벌이던 도중 닉과 그의 아내 허니를 초대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조지와 마사는 서로 험담을 하며 서로 물고 뜯기 바쁩니다. 그러던 도중 닉과 허니를 끌어들여서 게임을 하게 됩니다. 게임은 '주인장 욕보이기', '안주인 올라타기' 등 폭력적인 게임들 뿐입니다. 사실 조지와 마사는 상상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20여 년동안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상상의 아이를 키우며 남들에게 비밀로 살아가던 도중 마사는 허니에게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버립니다. 조지는 마지막 게임으로 '아이 꺼내기'라는 게임을 제시하며 마사가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상상의 아이를 죽여버립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 대한 해석 및 느낀 점

이 극은 우리에게 부조리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즉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꼬집는 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조지와 마사, 둘은 겉으로 보기엔 정말 부러운 사람들입니다. 조지는 대학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으며 마사 또한 대학 총장의 딸로 중산층 이상의 집안으로 보이는 집에서 태어났으니 말이죠. 하지만 둘은 매일 싸웁니다. 또한 둘 다 상상에서 깨어 나오지 못합니다. 이 극에서 나오는 닉과 그의 아내 허니 또한 마찬가지인데 닉 역시 조지가 교수로 있는 곳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허니 또한 부유한 목사의 딸로 나옵니다. 하지만 닉은 출세를 위해선 총장의 딸과 바람을 펴서라도 아내인 허니를 버릴 수 있으며 허니 또한 닉의 외도를 알면서도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워서 모른 척합니다. 저는 이 캐릭터들을 통해서 겉으론 멀쩡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즉 허황된 아메리칸드림, 미국의 현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극에 나오는 조지와 마사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그의 영부인인 마사 워싱턴에서 따 왔다고 하네요.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버지니아 울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늑대의 영어 단어인 Wolf일 수도 있고 세계적인 문학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제목의 의미를 결말 부분에서 알 수 있는데 마지막에 조지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냐며 노래를 부르지만 마사는 본인이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조지는 마사와 함께 키운 상상의 아이를 죽여버립니다. 마사는 아이가 죽은 상실감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현실과 허상, 그 중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사, 이를 통해 우리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제목을 '거짓이 아닌 현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두려워하랴?'라는 의미로 해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부조리극의 교과서라 불리는 이 작품은 아메리칸드림이라는 허황된 삶,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속에서 봤을 때 굉장히 부조리한 삶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은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집니다. '현실과 허상의 삶,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죠. 

 

-지금까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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