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알베르 카뮈_이방인 줄거리 정리 및 3가지의 부조리함과 죽음의 의미

빛나는 달빛 2021. 5. 1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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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기본개요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평가받는 알베르 카뮈의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영원한 작품으로 신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이방인 등장인물 정리


뫼르소
작품의 주인공으로 ‘부조리’라는 개념을 구현하고 있는 정직한 인물

마리 카르도나
뫼르소가 전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타이피스트

레이몽 생테스
뫼르소와 같은 층에 사는 이웃으로 뫼르소의 아랍인 살해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다

이방인 줄거리 정리


카뮈의 작품 이방인은 알제의 한 선박중개인 사무실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젊은 청년 뫼르소의 사건으로 시작한다 뫼르소는 여느때와 같이 일을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고서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게 된다 장례가 끝나고 뫼르소는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게 되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해수욕을 즐기는 등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마리와 사랑을 나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뫼릐소는 이웃중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나 동네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지게 되고 뫼르소와 친해진 레몽은 뫼릐
르소에게 한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그 제안은 변심한 자신의 애인을 괴롭힌다는 것. 결국 뫼르소는 레몽의 뜻에 이끌려 이 계획에 동참

그렇게 며칠 동안 이 둘은 이 계획을 위해 준비를 하던 중이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치게 된다 문제는 이 아랍인들 중 레몽의 옛 애인오빠가 있다는 것

결국 갈등이 커져 싸움까지 벌어지게 되며 레몽이 다치고는 싸움이 끝난다 그리고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꼈는지 시원한 샘가로 가고 거기서 우연히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 뫼르소는 그가 꺼낸 칼의 강렬한 빛에 자극을 받아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연극 이방인

그렇게 뫼르소는 법정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되고 법정 에서 뫼르소는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로 끝날 것이라는 얘기와 국선변호사나 예심판사도 '당신의 사건은 별 볼 일 없는 정도로 취급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부조리하게도 그 이후 법정의 주요 핵심 논쟁은 아랍인 살인사건이 아니라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던 모습과 그 후 놀러갔다는 행위가 된다

심지어 검사가 마리를 심문하여 사람들이 다 있는 법정에서 뫼르소와 성관계한 이야기까지 공개적으로 하게 만들어 파헤친다 여기서 판사는 이를 돕거나 방치한다(이 이야기는 마리가 법정에서 무심코 증언한 것이었는데 증언하는 도중에 이 증언 때문에 뫼르소가 불리해지는 것을 깨닫고 운다)

연극 이방인

또한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한 이유에 대해 변호해야 할 때 스스로 상황의 모든 맥락을 생략하고는 햇빛이 눈부셔서 그랬다라고 말만 하는 바람에 배심원들이 뫼르소를 별 것 아닌 일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로 몰아가며 무난하게 풀려나거나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결과와 다르게 어머니의 장례 건, 불충분한 자기 변호로 계획 살해범과 무자비한 인간으로 부풀려지며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죽음을 기다리는 뫼르소에게 교도소 부속 신부가 찾아와 그에게 죄를 털어놓을 것을 권했지만 뫼르소는 신부의 허위적인 면을 꾸짖고 자신의 죽음이야말로 진실되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증명한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처형되는 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증오를 퍼붓는 것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것으로 작품의 막을 내린다

연극 이방인


이방인 속에 나타난 세가지 죽음의 의미


1.자연사
오늘 엄마가 죽었다 로 막을 여는 자연사의 소식은 전보의 형식을 빌려 소설 속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엄마는 양로원에서 사망했으므로 이 죽음은 소설의 밖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통념상 큰 슬픔을 자아낼 것 같았던 어머니의 죽음을 화자인 뫼르소에게 큰 충격을 주는 거 같지 않다 적어도 뫼르소는 자신의 슬픔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사장에게 휴가를 신청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과 버스를 타고 멀리가야한다는 번거로운 일 등과 밤샘의 장례식에 대한 귀찮은 절차에 대해 나열할 뿐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다시 천천히 읽어낸다면 뫼르소에게 엄마의 죽음이 무관심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자 뫼르소가 무심한 듯한 어조의 진술이 암암리에 어머니의 죽음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2.살인
뫼르소가 바닷가에서 아랍인을 죽인 사건이다 이 살인이라는 사건에 대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아예 피해자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실질적으로 당시의 피해자는 피식민인 아랍인이고 그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등이 전혀 없어 이름조차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할 정도로 책을 읽어나가게 되며 작가는 이 인물에 대해 그저 어떤 인격을 부여한 것이 아닌 뫼르소가 체포되는 계기와 뫼르소를 감옥과 법정으로 보내기위한 장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즉 결과적으로 재판을 받고 뫼르소가 느끼는 부조리도 더욱 생동감있게 느낄 수 있다

3.뫼르소의 사형
이방인은 결국 법정의 재판을 통해 뫼르소에게 사형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끝난다 하지만 법정이 뫼르소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을 뿐이지 소설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닌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죽음의 사건은 오직 살인 뿐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작품 내 가장 심도있고 핵심적인 관심이 되는 죽음은 바로 이 사형이라는 죽음이다 이 죽음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법정의 분위기는 마치 뫼르소가 이 사건과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처럼 배제된 채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뫼르소는 이러한 이질적인 법정 안을 관찰하고 있으며 검사는 뫼르소가 저지른 범죄의 죄질과 뫼르소의 행동을 비난하며서 사형을 요청한다 이러한 구형에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진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며 덧붙여 살인의 동기는 그저 ‘햇빛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햇빛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알베르 카뮈는 소설 내내 태양의 찝찝함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사람을 죽인 이유에 대해 ‘햇빛 때문’이었다고 말한 뫼르소에게 공정한 판단을 요구할 수 있을까?

뫼르소에게 있어 태양이란 뜨거운 열기에 잠식당한 그리고 무기력한 자신을 비추어 주는 존재지만 이와는 반대로 마리에게 태양이란 아름다운 날씨를 선사해주며 즐거움을 주는 존재다 이처럼 같은 태양을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상반된 의미에서의 두 태양은 타인과 뫼르소 사이의 이질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부조리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백인의 범죄는 눈감아주거나 형량을 줄여주는 처우가 관행이었던 당시 부조리 사회에서 뫼르소의 사형 집행은 부조리의 부조리를 깨는 소설의 파격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장치는 뫼르소가 프랑스나 알제리에도 속하지 않는 철저한 이방인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방인 뫼르소가 부조리를 대하는 태도

소설의 부조리
1 엄마의 죽음
2 재판의 진행
3 뫼르소의 사형판결에서 표현되는 ‘기성 사회의 세리머니 요구

사르트르는 1952년 프랑스 '현대'지에 카뮈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카뮈여 뫼르소는 어디로 갔는가?
아마도 살해되었거나 추방되었음에 틀림없다 추상적인 관료제도에 입각해서 도덕법을 군림시킨다고 말하는 형식적이고 폭력적인 독재제도가 당신의 내부에 수립된 것.

작품 이방인은 젊은 시절의 카뮈가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탐구하며 쓴 소설이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의 뫼르소 또한 자신을 범죄자로 인식하기보다는 “인간의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관심이 있었다
작품 속 사회에서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사형을 당할 위험을 무릅쓴다 하지만 끝까지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진실보다 더 많이 말하며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이 표현하고 있다 어찌보면 우리에게 있어 뫼르소는 태양에 매혹된 가난하고 벌거벗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우리는 카뮈의 서문에서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뫼르소는 자신의 삶에 세 가지 죽음(어머니, 아랍인, 뫼르소)을 끌어들이며 실존의 배반과 패배의 모습을 전개하고 있는데 특히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뫼르소의 행동은 충분히 헐뜯고 비난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적절한 슬픔을 느끼고 공감하는 인간적인 감정을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감정에 대한 진실성을 허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그러한 기성의 세리머니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슬픔의 행위를 강요할 수 있을까? 또한 뫼르소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으로 판단해 진정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사형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뫼르소의 행위는 사회의 보편성에 타협하지 않은 점에서 기성 사회의 부조리를 깨트리는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기성 사회가 요구하는 슬픔의 세리머니를 받아들였다면 뫼르소는 ‘부조리한 대자적 존재’가 되지만 이러한 요구에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뫼르소를 ‘무지한 즉자적 존재’로 볼 수 있다. 뫼르소는 이러한 즉자성을 통해서 부조리를 온몸으로 깨부수고 있다 무지의 즉자성이말로 부조리를 거부하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 될 수 있으며 무지를 통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무지는 바로 카뮈가 말한 최대한의 솔직함이다

그래서 뫼르소는 진실보다 더 많이 말하며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이 표현하고 있다 날것의 감정으로서 뫼르소의 행위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기성 사회의 부조리한 세리머니를 거부하고 벌거벗은 동물과도 같은 뫼르소의 솔직함이 오히려 실존주의적 휴머니즘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이방인 포스팅을 마치며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 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인용한 것이다-

인간은 결국 모두 '사형수'다
삶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확신이
인간을 사형수로 만들어 놓는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 운명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사형수는 죽음과 대면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한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들었던 회의감 그리고 당위성에 대한 딜레마
시간이 흐른 후 불완전한 형태로 어느 정도 생각할 수 있다 필연적인 죽음의 운명 때문에 삶은 의미가 없어 자살을 해야된다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삶에 집중하여 더욱 치열하게 살아야한다고 작품 이방인의 참다운 이야기는 삶의 찬가 행복의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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