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안톤체홉 바냐아저씨or바냐삼촌 인물정리 및 줄거리정리 그리고 작품 분석

빛나는 달빛 2021. 8. 14.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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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냐아저씨 바냐삼촌 기본개요


사실주의 연극의 대가 체호프의 대표적인 희곡 중 하나권력의 허상과 사랑의 아픔을 보여주며 현대 사회에서 자주 마주치는 갈등들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바냐아저씨는 안톤체홉 자신의 희곡 [숲귀신](1888)을 개작한 것인데, 다시는 희곡을 쓰지 않겠다던 그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갈매기" 성공 이후 힘을 얻어 그 극장과의 두 번째 공연을 위해 여러 가지로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 원작 "숲귀신"은 주인공인 이고르(바냐)가 자살을 한다던가, 낭만주의적 성향의 마무리가 있는 것을 끝까지 살아가려하는 희망과 사실적인 묘사로 바꾸는 등 그의 삶의 관조적인 자세가 더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에 묘사된 모든 인간들간의 갈등 저변에 깔린 것은, 19세기말의 러시아의 세속과 도덕에 대한 항의이며, 작자 안톤체홉은 이런 생활과 타협할 수 없는 사람들의 정당성을 독자에게 호소하려 하였다.

작가 안톤체홉

바냐아저씨 인물 정리 및 특징들


세례브랴꼬프 퇴임한 교수, 60세 초반
지식과 명예, 자존심으로 무장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아무 것도 모름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면서 젊은 아내에 대한 불신, 퇴임 후 불안함 등이 그의 심리를 압박한다.

엘레나 안드레이브나 그의 새아내, 27세
교수의 지적인 모습에 반해 결혼하긴 하였으나 역시 나이 차를 극복하기 힘들어 하고 있다
의사 아스뜨롭으로부터의 도전에 허물어져 버리나 이내 자리를 되찾는다.

쏘냐 - 전처로부터의 딸, 20대 중반가량
줄곧 농지에서 농사만 지어 온 시골처녀이며
가꾸면 예뻤을 테지만 현재의 모습은 그저 억센 농촌 처녀일 뿐... 아스트롭을 흠모한다.

바이닛쯔끼 부인 - 미망인, 전처의 어머니, 70세 가량
자신의 사위가 유명교수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평생 그의 자료수집과 기사를 스크랩하며 살아온다.

바냐 그녀의 아들, 40대 중후반
순진하리 만치 열심히 일만 해왔던 시골아저씨. 자신이 그토록 힘들여 받들었던 교수의 실체에 실망하고, 그의 아내에 반하게 되면서, 생활이 흐트러지고 만다.

아스뜨롭 의사 (바냐의 친구), 30대 후반
의사이지만 환경에 관심이 많고 숲을 사랑한다. 허나 알 콜중독이다. 역시 엘레나를 보자 반해버리고 만다.

쩰레이긴 몰락한 지주 (바냐의 친구), 40대 중후반
아스트롭과 바냐의 친구. 경제적 불안함과 이혼한 아내의 위자료 등에 시달리지만 늘 낙천적이다.


『개인의 고립과 소통의 단절 속에서 반복되는 절망과 후회를 보여주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

바냐아저씨 바냐삼촌 줄거리 정리

정년 퇴임한 유명 교수는 그의 젊은 부인 엘레나와 함께 그의 시골 영지에 살기 위해 돌아오며 작품은 시작된다

그 영지가 원래는 사망한 그의 첫 아내의 소유인데, 그녀의 어머니와 오빠가 아직 거기 살며 그 농지를 관리하고 있다. 역시 이곳에 살고있는 교수의 딸인 쏘냐는 그의 새 아내와 비슷한 나이이다. 여러 해 동안 아내의 식구들은 교수에게 농지의 수익을 보내주었다. 교수는 거드름을 피우고 뽐내며 민감하다. 통풍치료를 위해 의사 아스뜨롭을 불렀지만 시골의 사라고 무시하며 한 번도 진료를 받지 않는다. 아스뜨롭은 숙련된 의사인데 그의 직업을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수행한다, 하지만 모든 이상을 잃어버렸고, 술로 시간을 탕진해 버렸다.

엘레나의 세련됨과 미모는 그 시골남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주는 존재이다. 아스뜨롭과 바냐는 둘 다 엘레나에게 사랑에 빠지지만 엘레나는 자신의 행동에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는 동안 쏘냐는 아스뜨롭을 짝사랑하는 아픔을 겪는다. 교수는 이 영지를 팔자고 제안하지만 바냐는 그간의 배신감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그에게 총을 쏘아버리지만 죽이진 못한다.
그후, 바냐는 자살을 하려고 의사의 약을 훔치는 일까지 벌어지고 아스뜨롭과 쏘냐는 그를 설득한다. 결국 교수 내외는 영지를 떠나버리고 모두 자기 자리에서 다시 전원생활의 삶은 시작하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4막 쏘냐의 독백

바냐아저씨 작품 해석

극장에서 상연된 희곡을 보고 고리키는 1898년 11월 체호프에게 편지했다.

『바냐아저씨를 보았습니다. 공연을 보고 여편네처럼 울었답니다. 신경이 예민한 인간도 아닌데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대단한 작품입니다 바냐아저씨는 완전히 새로운 연극 예술이며 대중의 비어 있는 머리를 후려차는 망치입니다 바냐의 마지막 막에서 의사가 기나긴 사이 뒤에 아프리카의 더위에 대하여 말할 때 당신의 재능 앞에 황홀해져서, 인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삶 때문에 전율했습니다."』

오늘 날까지 이 고리키의 편지는 작품의 본질에 관한 정확한 지적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다
작품 갈매기에서 '갈매기'에 부여된 상징과 바냐아저씨에서 '멀리서 반짝이는 등불'에 주어진 상징의 의미는
관객과 독자들의 심금을 오래도록 울리는 것이었다. 니나가 스스로를 갈매기라고 규정했다가 결국에 부정하면서 떠나는 장면과 트레플료프의 자살, 그리고 박제가 된 갈매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트리고린의 태도는 '갈매기'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을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임에도 스스로가 별임을 알지 못하는 아스트로프의 냉소주의는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여기서 아스트로프라는 이름은 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아스트론(astron)'에서 나온 것

체호프의 4대 장막극 가운데 두 번째 희곡인 바냐아저씨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대목은 시간에 유폐된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이라는 것이다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희곡의 사건은 바냐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마흔일곱 살의 나이에 느닷없는 자의식으로 고통 받는 철부지 같은 인간 바냐. 그는 지난 25년 동안 매제인 세레브라코프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왔다. 연봉 500루블이라는, 거지에게나 적선하는 돈을 받고 황소처럼 일했던 그가 갑자기 자신의 본령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바냐의 자의식 회복이 가져온 혼란과 무질서가 희곡의 주요 갈등으로 작용한다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 이제는 세레브라코프의 아내가 되어버린 아름다운 여인 엘레나 안드레예브나를 향한 연정, 자기의 입장과 처지를 조금도 고려 하지 않는 냉정한 인간 세레브라코프에 대한 분노, 앞으로 남아 있는 무의미하고 덧없는 인생에 대한 비극적인 성찰 등으로 바냐는 너무도 괴로운 것이다. 문제는 그와 같은 상황이 소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소냐에게 남겨진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되어 있다. 이제 스물 네 살밖에 되지 않은 소냐의 기나긴 세월과 시간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일 것인가. 아스트로프를 향한 사랑이 전혀 보답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냐는 무엇을 보면서 기나긴 세월을 살아갈 것인가

작품 바냐아저씨에는 이런 비극적인 음조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에서 소냐는 슬픔과 절망을 닫고 일어나 바냐를 위로한다 바냐아저씨 가운데 가장 시적이며 고상한 어조로 가득 찬 독백에 가까운 소냐의 대사는 외로움과 회한, 막혀버린 출구 때문에 괴로웠던 솥한 동시대인들을 향해 던져진 청량한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다 바냐아저씨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이번에도 고리키에게서 나왔다.

안톤체홉과 막심고리키

『"바냐아저씨"와 "갈매기"는 새로운 드라마 예술이며, 거기서 사실주의는 감동적이며 깊이 고안된 상징에까지 고양되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그것은 매우 타당한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의 희곡을 들으면서 저는 우상에게 희생된 삶에 대하여, 인간들의 저급한 삶에 개입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리고 여타의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다른 드라마들은 당신의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인간을 현실로부터 철학적인 일반화에까지 확산시키 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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