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안톤체홉 벚꽃동산 줄거리 정리 각 인물분석 및 작품 분석

빛나는 달빛 2021. 8. 1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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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체홉 벚꽃동산 기본개요


벚꽃동산은 1903년에 탈고되어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 이후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잡은 리얼리즘의 걸작이며 극작가 체호프의 유작이자 마지막 장막극이다

안톤체홉은 이 작품을 통해 러시아 혁명을 전후하여
지식인 계급, 귀족 계급의 몰락과 부유 상인 계급의
성장을 다루었으며 그 속에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것을 담으려 했다 작가가 말하는 인생이란 "인생이 좌절과 희망이 항상 교차하지만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은 다자이 오사무가 영향을 많이 받아 소설 사양을 쓰기도 한 작품이다.
다자이 오사무 본인이 일본판 벚꽃 동산을 써 볼 생각으로 써봤다고 밝히기도 했으며 아예 소설 중에 벚꽃동산의 캐릭터인 '로빠힌'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한다

벚꽃동산 등장인물 정리 및 분석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까야_여지주 40대초

아직도 사랑에 목숨을 거는 인물이며 현실감각이란 전혀 없고 돈쓰는 일 밖에 모른다 그렇지만 누구에나 친절하며 여런 마음씨을 가지고 있다 이름은 '사랑스러운'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단어에서 따왔다.

료니뜨 안드리예비치 가예프_
라네프스카야의 오빠 51세

지식이 풍부하고, 좋은 매너를 지닌 인물이지만 농노가 해방되고 자유무역경제시대가 오자 세상을 헤쳐나갈 힘이 없는 인물이다 오로지 귀족적 품위와 언행만 존재할 뿐,,,가문의 장남이고 특징으로는 당구 중독자, 예술 애호가

아냐 _라네프스카야의 친딸 17세

고생없이 자라서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직 어리고 철없는 딸이다 하지만 빼짜의 이상론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길을 개척하려하는 인물

바랴_라네프스카야의 수양딸 24세

집안의 관리와 걱정은 모두 그녀가 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겐 실질적인 힘이 없으며 로빠힌을 사랑하고 있지만 표현을 하지 못한다

예르몰라이 알렉쎄이비치 로빠힌_
농노 출신 부자상인 20대 후반

집안 대대로 이 집안의 농노였으나 농노해방과 함께
여러 수완을 부려 부자상인이 된 인물이다
활기차고 영리하며 현실감각 또한 뛰어난 인물이지만 바랴와의 사랑관계는 잘 처신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뜨로피모프 (뻬쨔)_대학생 죽은 아들의
가정교서 20대 후반

말만 앞서는 이상가이다 이 인물은 노동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노동을 할 줄 모른다

보리스 보리쏘비치 씨메오노프 (삐쉬크)_
이웃지주 가예프 나이정도

낙천적이며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지만 언제나 좋은 일이 오리라는 것을 믿는 인물이다 결국 그의 땅에서 희망이 생긴다

샤를로따 이보나보나_아냐의 가정교사

매력적인 몸매와 행동을 지닌 그녀는 어린시절 고아로 독일인 부부의 손에 키워지며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하고 있는 인물이다

쎄묜 빤뗄레예비치 에삐호도프_서기 20대 초중반

벚꽃동산의 영지 사무원이며 스물 두가지 불행이라는 닉네임을 갖고 다닐 만큼 그에게는 항상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 두나샤를 사랑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인물

피르스_집사 87세

평생 라네프스까야 가문을 섬겨온 충성스러운 늙은 하인이며 이 인물은 심각한 치매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본능적으로 집안 관리와 주인의 수발을 들고 있다

두나샤_하녀 17세

젊고 아름다운 하녀이며 밝고 쾌활한 그녀는 늘 귀족의 흉내를 낸다

아샤_하인 20대 초중반

라네프스까야와 파리에서 5년간 같이 있었던 그는 이미 파리지엥이 되어있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작가 안톤체홉


안톤체홉 벚꽃동산 줄거리


라넵스까야는 5년만에 프랑스에서 그녀의 집안 대대로 내려온 영지로 돌아오며 작품은 시작된다

그곳은 자신의 어린 아들이 익사한 곳이었으며 남편도 알콜중독으로 죽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은 그녀의 오빠 가예프와 양딸 바랴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이 벚꽃동산은 이제 희망없는 빚더미로 변한 상태였다 벚꽃동산이 이렇게 까지 희망도 없는 빚더미의 장소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라넵스까야의 계획없는 낭비벽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라넵스까야가 도착하자 식구들과 친구들은 그녀를 반겼다 죽은 아들의 가정교사였던 이상가 뜨로피모프,
라넵스까야 영지의 농노였으나 이제는 성공하여 부자사업가가 된 로빠힌, 빚더미에 시달리는 이웃집 지주 삐쇠 등등.... 가족들은 이 영지가 자신들 가문 대대로 내려온 고향이지만 경매에 올려지게 되었음을 아는데 로빠힌은 체리농원을 모두 없애고 여름별장을 만들자며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렇게만 한다면 적어도 영지의 부채는 해결할 수 있으며 지속적인 수입이 발생할 것이라고 로빠힌은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라넵스까야는 체리나무가 잘려지는 것을 심각히 여기며 제안을 거절한다 그녀의 오빠 가예프는 여러 해결방법을 떠올려 보나 결국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믿게되었다.

그렇게 벚꽃동산을 놓고 경매는 시작하게 되는데
운명스럽게도 로빠힌이 그 영지를 낙찰 받게된다
그리고 여름별장을 짓기 위한 목적으로 4막에서는
라넵스까야부인과 그녀의 가족은 체리나무가 일꾼들에 의해 잘려지는 가운데 이 집을 떠날 준비를 한다.
라넵스까야 부인은 빠리로 떠나고 로빠힌 역시
사업 수행의 목적으로 도시로 떠난다 양녀 바랴와 로빠힌간의 사랑은 안타까운 빗나감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집을 잠그고, 모두 떠났는데, 87세의 하인 피르스를 잊어버리고 남겨 놓았다.


안톤체홉 벚꽃동산 사건을 통해 주제탐구


이렇게 벚꽃동산의 주된 줄거리에서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여 무능함을 느끼며 좌절하는 인물들 즉 구소련의 쓰러져가는 귀족의 모습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농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라넵스카야라는 귀족사회의 여성을 통해서 그녀가 변화되고 있는 러시아의 사회에서 얼마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인물인가를 나타내며 동시에 그녀의 집안에 농노로 있던 사람의 아들인 로빠힌을 통하여 현실적이고 타산적인 상인의 계급을 소개시킨다 특히 벚꽃동산을 처분하여 여름별장을 짓자는 로빠힌의 제의를 거절하는 모습을 통해 현실세계에 적응 못하고 있는 라넵스카야의 무능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데 그녀의 무능함으로 인해 귀족사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영지를 경매에서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결국 벚꽃동산은 구세대의 몰락과 함께 경매에서 팔리고 그 아름다운나무들이 잘리게 되는 것이다

벚꽃동산의 기본 소재는 두 계급간의 지배를 위한 전쟁이기보다는 반복되는 경고를 무시한 후에 재산의 주인이 바뀌는 평화스러운 막간이라 할 수 있다 체홉은 계급간의 갈등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계급 증오의 감정을 유발하지 않고 벚꽃동산은 경매에 넘어가 헐리게 된다 즉 극의 표면과 심층이 각각의 전 개선을 따르고 있으므로 사건의 전개는 불분명하여 아무런 타협점도 찾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극의 표면과 심층이 각각 존재하듯 인물 역시 외적인 성향과 내적인 성향이 공존하기 마련인데 예를 들어, 라넵스카야와 그 가족들은 귀족적이고 우아한 외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내면에 간직되어온 순결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라네프스카야의 독백

하지만 그 순결한 벚꽃동산은 그녀가 지켜 내지 못해 그녀의 마음속에 순결함의 흔적만을 남기게 된다
라넵스카야의 벚꽃동산을 ‘순결한’ 벚꽃동산으로 보는 시각에서 가장 극적으로 대조적인 생각을 쏟아놓는 인물이 바로 뜨로피모프인데

뜨로피모프 (뻬쨔)의 독백

뜨로피모프는 농노제도 속에서 비인간적 귀족들의 행위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새로운 미래의 사회적인 목표에 대해서 인식은 하고 있으나 지켜내야 하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라넵스카야와 마찬가지로 나아가기보다는 머무르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만년 대학생인 뜨로피모프는 뚜렷한 갈등의 실체도, 뚜렷한 가치관에 대한 적극적인 피력도 아닌 채, 체념과 공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단지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기대감 안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다 이렇게 머물러 있는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반드시 어떤 결과를 보여 줄 수밖에 없는, 보여 주어야하는 인물인 로빠힌은 어떤 형태로든
벚꽃동산의 미래를 결정짓게 된다 즉,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해결방법을 강구하는 적극성의 시각에서 보자면 소극적인 인물들의 도덕성과 인생관을 벗어난 대치적인 관계로 보아야하자만 그 역시 벚꽃동산을 단지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정치적인 책략을 꾸미거나 하지는 않으므로 가해자로 분류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한정지을 수는 없다.

사라지는 벚꽃동산의 운명으로 인해서 영지에서 새롭게 살 곳을 찾아 그 곳을 떠나야하는 인물들과,
그 곳에 남아 새로운 영지를 얻는 인물들 사이에서 피르스는 극의 주제의 중심에 있는 독특한 존재감으로,
떠나고 남는 자들의 관계를 초월해 존재하고 있다 작품 4막에서 모두가 떠난 뒤 텅 빈 무대에서 ‘나무를 찍는 도끼소리 만이 들린다.’라는 마지막 지문이 있기 전의 피르스의 독백은 나름대로 갈 길을 정해 총총히 떠나는 인물들과의 ‘헤어짐’이라는 이별의식과 더불어 벚꽃동산과 그 자신의 시공간적 해체 의식을 함께한다.

피르스의 마지막 독백

살아 있는 존재는 텅 빈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텅 빈 것은 활동의 정지, 의미의 부재이며 따라서 죽음과의 유추를 가능케 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체홉이 보여 주고 있는 텅 빈 공간은 그 무엇으로 의미화 되기 이전의 순수한 공허의 상태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초적 공간인 것

벚꽃동산의 주인공들이 현실적 대상에 대해 취하는 무관심한 태도는 바로 이 원초적 공허로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여지고, 라넵스카야의 죽은 아들과 어머니가 주인공들의 삶 옆에 함께 존재하는 벚꽃동산의 혼돈된 시공은 위에서와 같은 텅 빈 공간이 단지 죽음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초월적 공허의 상태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벚꽃동산의 주인공들을 계층 상징의 이미지만으로만 보자면,

라넵스카야와 가예프는 사라져가는 귀족이며,
로빠힌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부르주아,
뜨로피모프는 지식 혁명인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계층을 상징하는 역할을 초월하여 자신들의 잡다한 삶에 충실하다. 그 충실함을 무엇인가를 비교하며 갈망하지 않게 하며, 집착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벚꽃동산에는 텅 빈공간이 주는 열린 미래와, 열려 있는 미래로 영원히 다가가기를 희망하는 ‘살아 있는 것들’과의 진실한 만남을 위해서는 낡은 것들과의 헤어짐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동산’이 있다.

벚꽃동산의 중심 사건인 벚꽃동산의 매각에 대해 가해와 피해의 구도에 대해 관찰해야한다 로빠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이 주어져 있으며, 결과적으로 로빠힌은 라넵스카야 일가로부터 영지를 빼앗은 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중심 사건은 단 한명, 로빠힌의 행동과 연결되어 있을 뿐, 농노였던 로빠힌은 입지전적인 노력과 사업 수완에 힘입어 부자가 되었고, 마침내 섬기던 주인의 땅을 손에 넣었다. 반면에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실질적 대책도 내놓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땅을 날려 버리고도 떠들썩하게 파티를 열고 있는 땅주인들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극적 행동과 명백히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로빠힌 조차도 진정한 의미에서 극적 행동을 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극적 행동이란, 그것이 살인이 되었던 연애가 되었든 간에 상대와의 관계와 대립 속에서 성립된다.

그런데 로빠힌이 벚꽃동산을 사게 된 과정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아무런 저항도 도움도 없었다. 로빠힌은 상대가 넋을 놓고 있는 동안, 방치된 목적 대상을 헐값 경매에서 거저주운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런 일방적 행동을 극적 행동이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땅주인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대책을 마련하라고 성화하는 로빠힌의 모습은 행동의 상대자를 잃어버린 우스꽝스러운 처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서 극의 주된 사건은 감추어져 있거나 간접적으로 제시 될 뿐이며, 무대는 벚꽃동산의 상실과는 상관없는 부차적인 사건들로 가득하다. 1막의 라넵스카야 일행의 도착과 함께 주고받는 인사말들, 그들이 집에 없는 동안 일어난 잡다한 사건들, 라넵스카야의 벚꽃동산에 대한 추억의 말들, 지주인 피쉬크의 돈을 꾸어달라는 부탁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로빠힌은 영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제시하지만 지주인 라넵스카야와 그의 오빠인 가예프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로빠힌이 제시하는 영지를 지킬 수 있는 방법적인 제시를 실질적으로 가장 귀담아 들어야하는 라넵스카야는
“나는 당신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군요!”라고 일축한다. 오히려 일의 해결과는 전혀 무관하게 벚꽃동산의 아름다움과, 추억을 늘어 놓고, 가예프는 ‘아주 오래된’, ‘존경에 마지않는’ 책장에 대한 집착을 독백하기까지 한다. ‘돈이 없어서 큰일’이라는 실질적인 상황과는 관계없이 비싼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하며, 심지어 경매 당일에는 악사들을 초청하여 무도회를 열기도 한다. 장부계인 에피호도프는 두냐사를 사랑하고, 두나샤는 야샤를 사랑하며, 바랴는 로빠힌을 마음에 들어 한다. 바랴는 벚꽃동산이 경매에 넘어가는 그 절실하고 미묘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주인이 된 로빠힌의 청혼을 기대하고 심지어는 라넵스카야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로빠힌은 결국 청혼하지 않는다. 이 같은 사건들은 주된 사건을 해결하는데 불필요한 것들로 보이고, 각각의 사건들은 주된 사건의 전개와는 관계없는 개인적인 것들, 삶 속에서 매번 새롭고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부단히 발생되는 우연적인 것들이다.

우연적인 사건들은 주된 사건으로부터 독립적이고, 동등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지고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벚꽃동산의 ‘상실’이라는 주된 사건은 드라마의 모든 행위들의 목표가 되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통일적인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다. <벚꽃동산>에서는 원심력이 구심력보다 지배적이다. 등장 인물들의 대화 역시, 곧 잃게 될 것이 점점 명백해지는 그들의 영지를 지켜 내기 위한 각오나 근심과는 거리가 멀다. 로빠힌의 제시를 무시하는 라넵스카야는 그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함께 있으니 즐겁다는 이유로 그를 붙잡아두고, 뜨로피모프는 아냐, 바랴와 함께 철학적인 궤변을 늘어놓고, 노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로빠힌은 벚꽃동산을 지켜내기 위한 실질적이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이 세상에 양심적이고 고상한 인간들이 얼마나 적은지를 이야기하고, ‘거인들은 동화에서만 훌륭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라넵스카야에게 하기도 한다.

결론을 내릴 것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이들의 대화는 극의 발전에는 여전히 불필요하듯이 보이지만,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인텔리겐치아에 대한 비판, 노동의 요구와 미래에 대한 희망, 상인인 로빠힌이 보는 세계관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하는 라넵스카야 등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아직 아무것도 분명해지지는 않았지만, 곧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역사의 기류를 잘 읽어 내고 있기도 하다. 결말에서, 결국은 지켜 내지 못한 그들의 영지를 꼭 지켜야 했었던 사람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모두 ‘잃어 버렸으니’ 떠나는 것으로 중심사건의 결말을 지어버린다. 로빠힌이 새로운 벚꽃동산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빼앗긴 자의 원망과 절망감도 없고,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할 만한 카타르시스와 극의 클라이맥스도 없다. <벚꽃동산>의 이별의 장면에서는 주인공들 사이의 연대감은 찾을 수 없다. 모두가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져 간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아무런 힘도 없어 보이는, 모두가 떠난 자리에서 모시던 주인이 털외투를 입고 가지 않았을 것을 걱정하는 늙은 하인 피르스만이 무대에 남는다. 벚꽃동산에서 사건들은 단일하고 집중된 사건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그와는 상관없이 때로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확장된다. ‘벚꽃동산의 경매’라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고, 주인공들의 운명이 결정되며, 사람들은 이에 대해 행동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에만 매달려 있지 않다. 그들은 하나의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평범한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해야 하며, 그것에 대해서 고찰하기도 한다. 그들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며,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체홉은 삶의 이러한 측면에서 극적인 것으로 단축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그보다는 삶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시키고자 하였다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실제생활에서처럼 복잡하게 그러나 단순하게 해라. 예컨대 사람들은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그저 식사할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행복이 창조되고 있거나 그들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 라는 체홉의 말처럼 우 리의 일상은 극적인 순간들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때로는, 비극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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